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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역할은 범죄 피해자를 범죄 사실로부터는 물론이고 사회적 편견과 2차 가해로부터도 보호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고 오히려 그 반대 방향으로 작동했다. 그 결과 성폭력 피해자로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했을 최말자님께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드렸다. 깊이 사죄 드린다.” 이어 무죄를 구형했다. “1964년 5월 6일 발생한 이 사건은 성폭력 범죄에 대한 정당한 방위 행위이다. 과하다고 할 수 없으며 위법하지도 않다.”
검찰을 향한 세상의 서릿발 같은 시선 속에 정 검사의 사죄는 낯설고도 그린기술투자 주식
상징적인 잔영으로 남았다.
◇ 과거에도 무죄였고, 지금도 무죄다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죄 판결을 받은 최말자씨에게 7월 23일 무죄를 구형했다.
“저희에게 답을 고쳐서 써낼 수 있는 기회, 과거 법조인들의 잘못을 사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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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년이나 걸릴 일이었을까?
“그 사이 일어난 유사 사건들은 다른 판결을 받았다. 80년대부터 혀 잘린 사건에서 무혐의, 무죄가 나왔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은 대표적 판례로 남아 법률가들에게 마음의 부담을 주었던 것인데, 그 표지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최말자 할머니의 재심 청구를 일본주식시장
1·2심 법원은 기각했다.
“재심을 하려면 그 사이 법률이 변경됐다든가 당시 수사가 불법이었다는 증거가 나와야 한다. 최말자씨는 불법 감금을 주장했지만 그분 진술 외에는 증거가 없었다. 법이 정한 재심 개시 요건에 해당되지 않으니 법원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법의 한계다.”
−그런데 왜 대법원은 원심 파기 환송으로 재하이티비
심의 길을 열어줬나?
“대법원은 여러 정황에 비춰볼 때 최말자씨 진술만으로도 불법 감금을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대법원이기에 좀 더 폭넓게 해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무죄 구형에 대해 검찰 내부에선 이견이 없었나.
“물론이다.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해 달라’는 식의 중립적 구형을 할 수도 있었해저이야기사이트
지만 ‘무죄 구형’을 택했다. 사죄를 할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여서, 윗분들께 보고하지 말고 내가 그냥 해버릴까도 생각했지만, 검찰의 합의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제안했고 흔쾌히 승인해주셨다.”
−‘피고인 최말자’를 ‘최말자님’으로 호칭한 것도 화제였다.
“그분이야말로 피해자인데 검찰이 피해자로 대우해 드리지 못하고 오히려 가해자로 취급한 것이 가장 죄스러웠다.”
-피고인 심문 없이 바로 무죄를 구형하던데.
“심문을 하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다시 떠올려야 하고, 그것이 또 한번의 상처가 될 거란 생각에.”
−여성 검사라 이 사건이 더 각별했을까.
“여성이기 전에 법률가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변호인의 마지막 변론처럼 이 사건은 과거에도 무죄였고, 지금도 무죄다. 여성이 억압받던 60년대에 최말자씨는 남자의 혀를 자른 독한 여자, 남자 인생을 망친 가해자로 여겨졌다. 그러나 어느 시대든 법률가의 역할은 사회적 편견을 걷어내고 개인에게 보장된 법적 권리를 보호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법률가가 오히려 피해자를 가해자로 규정하면서 그 편견을 확대시켰다.”
−성범죄여서 그랬을까.
“국민참여재판에서 성범죄 무죄율이 높다는 건 상징적이다. 50% 가까이 된다. 그만큼 법률로 해석되지 않은 피해자에 대한 편견, 여성성에 대한 편견이 우리 사회에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편견이 법률에 그대로 투영돼 개인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이번 재판은 국민이 법률가에게 부여한 막중한 사명을 뼈아프게 성찰할 기회를 주었다.”
-재판 후 최말자 할머니를 따로 만나셨나?
“그렇지 않다. 다만 검찰의 사죄를 기꺼이 받아주시고, ‘후세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 달라’고 부탁하실 때 가슴이 뭉클했다.”



61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 혐의 유죄 판결을 받았던 최말자(78)씨가 지난 7월23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재심 첫 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며 손을 치켜들며 “이겼습니다”를 외치고 있다. 이날 검찰은 "정당방위가 인정된다"며 무죄를 구형했다./연합뉴스


◇ 검찰 개혁 4법? 무너지는 사법 신뢰
−정명원은 4년 전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이란 책으로 대중과 만난 적이 있는 검사다. ‘유퀴즈’에도 출연했더라.
“검사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고민을 안고 사는 사람들인지에 대해 쓴 글인데, 놀랍게도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다.”
−‘대부분의 검사’는 이렇게 살아간다고 했더라.
“검사의 80~90%는 형사부, 공판부에서 매일매일 배당되는 사건들과 싸우면서, 소소한 보람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세간의 시선과 달리 권력을 추종하거나 이름을 드높이겠다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는 검사들은 별로 없다(웃음).”
−검사가 지녀야 할 능력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약간의 상상력’이라고 썼더라. ‘법조인이 천 갈래 만 갈래의 세상사 앞에 확고한 기준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오류, 무고, 비극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경계한 대목이 인상 깊었다.
“내가 모르는 영역에 진실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한 사람의 억울함을 빚어낼 위험이 더 크고 중하다고 여긴다면 그 오류들을 조금씩 줄여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검찰 개혁 논의가 한창이다.
“개혁을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나 정치권에 계신 분들은 대부분의 검사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저를 비롯해 형사부, 공판부 검사들이 해온 검찰 본연의 임무가 우리 사회에 가장 보탬이 되는 방식으로 개혁되길 바란다.”
−민주당은 검찰 개혁 4법 강행을 예고했다.
“일반 국민에겐 자신의 사건이 그 어떤 대의(大義)보다 중요하다. 그 사건들이 왜곡된 시스템에 의해 지체되고 해결되지 않는다면 사법의 신뢰는 무너진다. 일반인은 재판에 이르는 과정에서 국가가 검사라는 사람들을 시켜 나를 보호하고 대신 얘기해 주는구나를 체감하는 데 현재의 개혁 방향이 그곳을 향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보완수사권 폐지가 가장 문제일까?
“정치권이 보완 수사의 개념을 알고도 이걸 없애려는 건지 정말 궁금하다. 경찰의 수사 기록만 보고 기소 여부를 판단한다는 건 이론적으로만 가능하다. 한 사건 안에 수천 가지 결이 있고, 사건 해결을 위해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할 부분은 그 기회를 열어줘야 한다. 보완수사권 폐지로 얻는 이익이 무엇인가.””
−‘검찰의 자업자득’이라고 한다.
“특수부 중심의 시스템을 형사부 중심의 검찰로 개혁하면 된다. 보완수사권이 없어지면 뭔가에 가려져 좀 더 규명해야 할 사건들을 해결할 수 없다. 더구나 경찰에서 불기소되는 사건들은 그냥 묻혀 버린다.”
−경찰이 완벽한 수사를 한다면….
“수사 주체가 아무리 선의 있고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빈틈이 생길 수 있고, 경찰에서 보이는 것과 다른 기관에서 보이는 것이 달라질 수 있다. 경찰에 수사종결권까지 주고 어떤 통제나 보완도 할 수 없다면 기존 검찰과 똑같은 조직이 되는 것 아닌가.”



지난 8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검찰개혁 긴급 공청회. /뉴스1


◇ 공판검사는 지게꾼?
−형사부, 공판부에서만 20년을 일했다. 자칭 ‘외곽주의자’라고 했더라.
“영혼이 자유로운 내가 검찰에서 이토록 오랫동안 일할 줄 몰랐다는 친구도 있다(웃음). 우리 조직이 형사부를 홀대하고 권력 편향적으로 나가는 게 싫어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정치 검사들에게 검찰을 다 넘길 거야?’란 오기도 있었던 것 같다(웃음).”
−출세의 발판이라는 특수부에 가고 싶었던 적은 없나.
“그게 왜 출세인지 잘 모르겠다. 큰 나무, 화려한 꽃이 아니어서 볼 수 있는 세상이 나는 더 좋았다.”
−지난해 공판 검사 최초로 ‘블랙벨트’(1급 공인 검사) 자격을 얻었다.
“공판 검사가 ‘지게꾼’으로 취급되던 시절이 있었다. 수사 검사가 만든 기록을 법원으로 나르는 지게꾼(웃음). 그러나 재판 환경의 급변으로 증거 다툼이 심화되면서 ‘공판 중심주의’ 시대가 됐다. 나는 ‘공판이 수사의 꿈을 실현해준다’고 믿는다.”
−국민참여재판에 특히 심혈을 기울인다던데.
“법률가의 문법에서 벗어나 일반 국민의 눈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것, 그러나 법률적 판단에 들어와선 안 되는 사회적 편견을 걷어내며 배심원들을 설득해 나가는 과정이 큰 도전이면서 보람이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상주 농약 사이다 사건’의 국민참여재판도 주도했다.
“피의자가 연세 많은 시골 할머니라 동정심을 얻었고, 직접 증거 없이 간접 증거들로만 퍼즐을 맞춰가며 배심원들을 설득해야 하는 재판이라 나의 모든 것을 갈아넣었다고 해도 될 만큼 총력을 다했다. 아직 많은 과제를 안고 있지만, 국민참여재판이 형사재판의 민주적 정당성과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제고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검사의 일상과 고민을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이란 책으로 엮어낸 정명원 검사. 그는 자신이 가진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국민참여재판에서 발휘하고 있다며 웃었다. /신현종 기자


◇ 인간에 대한 낙관
−두 자녀를 키우는 ‘엄마 검사’다.
“초짜 엄마 검사들에게, 학교 가는 날과 안 가는 날부터 구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학교 안 가는 날 등교시킨 적이 많아서(웃음).”
−범죄 기록 보며 ‘태교’한 딸이 범죄 스릴러를 좋아한다는 대목, 두 아이가 ‘체포 놀이’를 한다는 대목에서 웃었다.
“큰애가 고등학생인데 엄마가 입시를 도울 수 없다는 걸 아니까 혼자서 한다. 인생 길게 보면 너 같은 아이들이 성공한다고 격려한다(웃음).”
-남매가 싸우다가 ‘엄마는 누구 편이야?’라고 물으면 ‘언제나 정의편이지’ 한다던데, 당신이 생각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음…, ‘대단히 바른 것’은 아니다. 인간이라는 종을 유지하기 위해 욕심을 내려놓고 서로 배려하고 사랑하면서 공동체를 선한 방향으로 지속시키려는 노력? 그 비슷한 게 아닐지.”
−검찰을 떠나면 국숫집을 열고 싶다고 했더라.
“말아먹을 게 뻔하니 그건 어려울 것 같고, 대신 아버지의 사과 농사를 물려받을까 한다. 강원 정선, 하늘 밑 동네라 경치도 끝내주고, 사과도 엄청 달다(웃음).”
−최근 펴낸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에 그 아버지에 대해 썼더라.
“나의 외곽주의자적 성향은 아버지에게서 왔다. 남들이 알아주든 말든 거친 돌밭에 사과나무를 심고 매일 저녁 그날의 날씨와 작물의 상태, 자신이 한 일을 기록하던 아버지의 방식으로 나 또한 검사 일을 해왔다는 생각…. 나의 책 역시 아버지의 영농일지 방식으로 쓰여졌다”
−책 곳곳에서 웃음이 터진다. 특히 닭이라고는 양념 반 후라이드 반만 알았던 초임 검사가 ‘씨닭(종계) 절도 사건’을 맡아 ‘씨닭, 씨닭’거리며 헤매던 일화.
“도박의 룰부터 유흥 세계의 은어까지, 검사 20년은 책에 나오지 않는 세상의 온갖 잡지식을 취득하며 내가 얼마나 모르는 것투성이인지 절감한 시간이었다(웃음).”
−부제가 ‘범죄 너머에서 발견한 인간에 대한 낙관’이다.
“검사로서 내가 매일 마주한 얼굴은 시커먼 악의 얼굴도, 청명한 정의의 얼굴도 아닌, 그저 애쓰고 있는 평범한 이들의 얼굴이었다. 구속영장마저 결국은 해피엔딩으로 향하길 바라는 마음, 그 인간적 낙관을 잃지 않기 위해 오늘도 검찰청으로 출근한다.”
☞정명원
1978년 대구 출생. 강원 정선에서 유년기를 보낸 뒤 중학교 때 대구로 돌아와 대구여고, 경북대 법대를 졸업했다. 2006년 검사가 된 뒤 형사부와 공판부에서 금융·조세·의약·성폭력·마약·살인 등 다양한 사건을 담당했다. 지난해 국민참여재판 분야 블랙벨트(공인전문 1급) 검사가 됐다. 상주지청장, 부산지검 공판부장을 거쳐 대구지검 서부지청 차장검사로 일하고 있다.



정명원 검사가 펴낸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첫 책이 검사의 일상과 고민을 위주로 썼다면, 이번 책은 범죄란 무엇이고 거기에 실린 인간의 마음은 무엇인지에 더 집중해서 썼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