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스크]◀ 앵커 ▶내란 우두머리 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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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coajfieo 조회5회 작성일 25-04-21 19:57본문
[뉴스데스크]◀ 앵커 ▶내란 우두머리 혐의
[뉴스데스크]◀ 앵커 ▶내란 우두머리 혐의 피고인 윤석열 전 대통령이 피고인석에 앉은 장면이 오늘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특혜 논란과 비판 속에 뒤늦게 법정 촬영을 허가한 이유도 재판부가 직접 밝혔는데요.오늘 법정 내부 모습을 박솔잎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재판 시작 3분 전인 오전 9시 5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문으로 들어섰습니다. 검사석과 증인석을 거쳐 피고인석으로 걸어가는 동안 변호인단 전원이 일어섰습니다. 짙은 남색 정장에 붉은색 넥타이를 맸고, 머리는 빗어넘겼습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 형사재판 피고인석에 앉은 윤 전 대통령 모습이 언론에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첫 재판 때처럼 재판부와 가장 가까운 둘째 줄 안쪽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른바 '윤어게인' 신당을 추진한 김계리, 배의철 변호사는 바로 뒷줄에 앉았습니다. 윤 전 대통령은 변호인과 짧은 대화를 제외하고는 줄곧 입을 다문 채 정면을 응시했습니다. 오전 10시 정각 재판부가 입정하자 윤 전 대통령은 일어서서 고개를 숙였습니다. 피고인석에 앉은 전직 대통령이 언론에 공개된 건 전두환, 노태우,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어 5번째입니다. 신청이 늦게 들어와 첫 번째 공판 촬영을 불허했다고 했던 재판부는 촬영을 허가한 이유를 직접 밝혔습니다. [지귀연/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재판장] "국민의 관심과 알 권리 등을 고려해서 이전 유사 사안 전례와 마찬가지로 공판 개시 전에 한해서 법정 촬영을 허가했음을 알려드립니다."촬영은 재판이 본격 시작되는 오전 10시 3분까지 이어졌습니다. 윤 전 대통령은 이후 증인 신문 과정에서는 주로 눈을 감은 채 듣기만 했습니다. 첫 공판 때는 93분 동안 발언하고, 검찰의 증인 신문 도중 끼어들다 재판부 제지도 받았는데 그때와 좀 달랐습니다. 재판 막바지에 8분 정도 발언했습니다.포토라인은 오늘도 없었습니다. 윤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들과 달리 차량에 탑승한 채 지하주차장을 이용해 특혜 논란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법원은 경호와 방호 문제를 이유로 들었는데, 서울중앙지법 동문 앞에 모인 탄핵 찬반 시위 참여자들은 20명 정도에 그쳤습니다. MBC뉴스 박솔잎입니다. 영상취재: 정인학 / 영상편집: 박초은 MBC 뉴스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전화 02-784-4000 ▷ 이메일 mbcjebo@mbc.co.kr [바티칸=AP/뉴시스] 교황청은 프란치스코(89) 교황이 부활절 다음 날인 21일(현지 시간) 선종했다고 발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3월 첫 남미 출신으로 266대 교황으로 선출됐었다. 2025.04.21. [서울=뉴시스] 구자룡 기자 =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위 12년간 가톨릭 교회를 더 포용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전임 교황들이 교조적이고 전통적인 접근 방식을 취한 반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를 더욱 세계적이며 동료애적인 곳으로 만들고자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21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후임자를 선택할 추기경들은 중대한 결정에 직면해 있다”며 “더욱 세계적이며 협력적인 교회를 지향하는 교황의 길을 따를지, 아니면 프란치스코 전임자들의 교조적이고 전통적인 접근 방식을 복원할 것인지 기로”라고 전했다. 이는 추기경들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의 주제가 될 것이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들에게 논쟁할 만한 복잡한 유산을 남겼다고 NYT는 전했다. 프란치스코의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태도에 따른 ‘프란치스코 효과’로 신자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올 것이라는 초기의 희망은 대부분 실현되지 못했다. 세속화된 서구에서는 교회 참석률이 계속 감소한 반면 남반구에서는 교회 참석률이 증가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의 성적 학대 위기를 해결하고 교회의 모호한 재정 문화를 해결하는 데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가 교회의 미래를 위해 제시한 길은 앞으로 많은 논란이 될 것이라고 NYT는 분석했다. 이혼, 기혼 사제 허용, 동성 커플 수용, 여성의 역할 증대 등 프란치스코가 적극 추진했던 화두들은 보수적인 교황 집권 이후 자유주의 가톨릭 신자들을 열광시켰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개혁 성향이 덜한 후임자가 들어서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과정을 시작했으며 어떤 이들은 그가 교회 교리를 희석시켰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임 동안 베네딕토 16세와 요한 바오로 2세가 추구했던 방향을 바꾸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성인으로 추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 내 아동 성 학대에 대해 위험할 정도로 무지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바티칸 보고서에서 평가했다.그는 자신의 정책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회 교리 및 감시 사무소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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