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그와 함께 사라진다.세상엔 남의 불행이 위안이 되는 고통이 얼마든지 있다. 옆방에 머무르던 부인이 막내딸이 신병을 얻어 수녀로 하느님께 바칠 거라고 고백했다. 그 소리를 듣고 화가 난 작가는 외아들을 잃었다고 처음으로 타인에게 말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자기들의 근심이나 걱정을 위로 받으려고 자신의 불행을 예로 들어가며 쑥덕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남의 고통에 쓸 약으로서의 자신의 고통, 생각만 해도 작가에게는 끔찍한 치욕이었다.본문 137쪽다른 이들에게는 결코 열리지 않는다.무엇을 해도 아들이 어두운 땅속에 누워 있다는 생각만으로 발작적인 설움에 복받친다. 딸과 함께 산에 갔다 봉숭아를 뿌리째 뽑는 바람에 집으로 들고 온 작가는 초월적인 존재가 자신이 봉숭아를 실수로 뽑았듯이 실수도 못 되는 호기심으로 장난처럼 아들을 거두어간 게 아닐까 생각한다.아들의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나서 앞으로 기쁨도 근심도 없을 거라고 믿었다. 또한 다시 사랑하는 이가 죽는 것을 볼까 걱정을 하게 된다.박완서 작가는 1930년 경기도 개풍군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소학교 입학 전 어머니, 오빠와 함께 서울로 상경했다. 숙명여고를 거쳐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지만 한국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했다. 1953년 결혼해 1남 4녀를 둔 평범한 주부에서 1970년 《여성동아》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불혹의 나이에 문단에 데뷔했다. 1988년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참척의 고통을 겪었고, 이를 일기로 쓴 것이 《한 말씀만 하소서》이다. 자식을 잃은 애끓는 마음과 세상과 신을 향한 원망이 날것 그대로 표현되어 있어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을 깊이 위로한다. 2011년 1월 담낭암으로 타계할 때까지 40여 년간 80여 편의 단편소설과 15편의 장편소설을 썼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는 에세이스트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는 작품이다. 그녀는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롭지만 따뜻한 시선과 진실된 필체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작가는 인간의 기도나 선행과는 상관없이 인간으로 하여금 한 치 앞도 못 내다보게 눈을 가려놓고 그 운명을 마음대로 희롱하는 신이라면 있으나마나가 아닌가 생각했다. 지치도록 울다가 서울서 가져온 가방을 뒤지다 묵주를 발견한다. 그 묵주로 9일기도도 바쳐보고 단식기도도 바쳐봤지만 남편의 죽음을 막지 못했었다. 하지만 묵주로 주모경을 바치고 주머니 속에 넣어둔다.작가는 바깥 풍경을 주시하다가 자신의 아들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는데 자기가 열심히 보고 있는 것의 무의미성에 진저리를 쳤다.작가가 신의 부당함을 항의하고 억윤하다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그닥 죄가 없다는 거였다. 그때 계시처럼 떠오른 죄가 주지도 받지도 않은, 타인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었다. 그 벌로 태산 같은 고통을 받았음을 변기 앞에 무릎 꿇은 자세로 먹은 것을 게워내며 깨닫고 신에게 승복했다.밤중의 첫 키스와 첫 분노도그러다 아들 대신 딸 중의 하나를 잃었더라면 이보다는 덜 애통하고, 덜 억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한다. 작가는 그런 생각이 떠오른 것 자체가 두려워 황급히 성호를 그었다. 그래도 두려워서 화장실에 가서 울며 용서를 비는 기도를 했다. 작가는 오직 그분만이 생사를 관장하고 있다고 신의 권위를 믿고 있었고, 불쌍하게도 깊이 공구(恐懼)하고 있었다.#한말씀만하소서#박완서#세계사#참척지변#참척#묵주기도#성당미사#연미사#분도수녀원#이해인수녀#대운초논술#한내들한우리#서창논술#한우리서창#웅상논술#한우리웅상#양산논술#한우리양산#한우리독서토론논술뜨거운 철판 위에서 들볶이는 참깨처럼 온몸이 바삭바삭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아들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증거는 살아 있는 자들의 기억밖에 없다.1988년 여름, 작가는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는 참척(慘慽)을 겪었다. 안 먹겠다는 의지 없이도 몸에서 저절로 음식을 받지 않아 몸도 쇠약해져 갔다. 맏딸 호원숙 작가가 책임감과 극진한 애정으로 그녀를 돌보기 위해 부산으로 모셔간다.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쓴 글은 하느님에 대한 부정과 회의와 포악과 저주로 일관돼 있다. 그러나 이는 하느님에게 도와달라는 절절한 통곡 소리였다.주여, 저에게 다시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주여 너무 집착하게는 마옵소서.작가는 수녀원을 떠날 준비를 했다. 일기를 정리하고, 책들을 분류했다. 비록 육신의 소멸과 함께 사라질 덧없는 기억이지만 작가는 충만감을 느꼈다. 작가는 가장 어려울 때 신세진 수녀원에서 얻어 가진 좋은 추억의 힘을 믿을 수 있어서 한결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무서워서 피하던 생각과 이제 두려움 없이 직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아들이 없어진 동네에서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풍경과 길과 상가의 사람들을 대하며 살아갈 일이 무서워서 가슴이 떨렸다. 그리고 몇 달 후 작가는 조금씩 다시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다시 글을 쓰게 됐다는 것은 작가가 아들이 없는 세상이지만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는 증거였다.본문 9쪽주님, 당신을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믿어서도 아닙니다. 만에 하나라도 당신이 계실까 봐, 계셔서 남은 내 식구 중 누군가를 또 탐내실까 봐 무서워서 바치는 기도입니다.어느 날, 딸 친구가 먹을 것을 해가지고 왔다. 딸이 친구의 어머니가 독실한 신앙과 끊임없는 기도 생활 덕분에 참척을 겪은 적이 없다고 하자 자신의 기도가 모자라 아들을 잃었다고 하는 것 같아 작가는 딸이 고깝고 야속했다. 신앙 깊은 어머니 덕에 자손이 다 잘 된 얘기가 작가에게 그렇게 뼈아프게 와닿았음에도 자신이 당한 고통의 의미를 자신이 저지른 죄를 통해 찾아내려는 종교적 심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