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됐든 작품 원본에서 많이 자르긴 했습니다.지폐에는 가장 왼쪽에 조지 위스부터 토마스 린치까지 5명은 잘리고 버지니아주의 리처드 헨리 시부터 시작을 했고 오른쪽에는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에드워드 렛레지 까지 살고 델라웨어의 토마스 맥퀸과 뉴욕의 필립 리빙스턴은 잘렸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잘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제법 많이 넣긴 했네요.미국 국회의사당, 미국 워싱턴 DC물론 우리나라의 광복이 정치적 역사적으로 굉장히 복잡하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만드는 게 무리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미국처럼 국민을 단결시키는 상징적인 이미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바로 구하기조차도 힘든 2 달러 지폐입니다.항상 자유를 외치는 미국인들에게 1776년 7월 4일 독립이란 정말 의미가 있겠지요.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작품을 다시 잘 보면 토마스 제퍼슨이 존 애덤스의 발을 밟고 있습니다.하지만 작품에 담긴 순간은 독립선언문의 초안을 작성하는 모습으로 미국 대륙회의 회장 존 핸콕의 주최 아래 토마스 제퍼슨과 벤저민 프랭클린, 존 애덤스, 로저 셔먼, 로버트 리빙스턴이 작품 오른쪽 아래에 모여있습니다.독립선언 Declaration of Independence독립선언문을 작성하고 사인을 한 곳은 필라델피아에 있는 인디펜던스 홀이라는 곳인데요.작품에 있는 하얀 머리를 다 세어보면 총 47명입니다.미국 지폐에는 온갖 코드가 숨겨져 있다고 하는데요.캔버스에 유화거리에서 만세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는 작품도 괜찮겠지만 일왕이 종전을 선언하는 모습이나 항복문서에 사인을 하는 장군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지금은 TV나 신문사에서 기자를 보내 사진을 찍고 중계를 했겠지만 당시에는 그런 기술도 없으니 기록을 남길 방법으로는 오직 그림을 그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존 트럼벌은 자신은 저 모습을 보지 않았고 더욱이 저 장소에 가보지도 않았습니다.존 트럼벌미국인들에게는 아주 의미 있는 순간을 작품에 담았습니다.1776년에 일어났던 일을 1817년에 칠순 할아버지가 기억으로 스케치를 그려줬으니 정확할 리가 없지요.많은 사람들이 이걸 보고 제퍼슨과 애덤스 사이에 정치적으로 안 좋은 관계를 표현했다라고들 합니다만 엄청 확대해서 보면 옆에 겹치게 그리다 보니 저렇게 보이게 된 겁니다.믿거나 말거나, 정확한 건 아닙니다.토마스 제퍼슨이 그려준 스케치를 보고 작업을 했습니다.이 작품은 존 트럼벌이 1817년에 주문을 받아 작업을 했고 미국 정부는 1819년에 작품을 구입해 1826년에 워싱턴 DC에 있는 미국 국회의사당에 걸어서 지금까지 약 200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짝퉁 위조지폐도 많습니다. 미국 2달러 지폐를 인사동 골목에서도 팔고 있으니 말 다 했죠.토마스 제퍼슨과 존 애덤스 사이에는 어떠한 정치적 대립이나 그런 게 없다는 걸 확실히 하기 위해서 2달러 지폐에는 눈에 보이게 둘의 발을 떼 놨습니다.5.5 m x 3.7 m고화질 이미지로 전면 교체하고 내용 살짝 업데이트 한 이 미술스토리는 2015년 7월 31일 아침 5시 8분에 포스팅한 글을 재탕했습니다.가로 5.5 미터나 되는 작품을 그리기 위해서 저리 바쁘신 분들이 몇 시간을 서 있을 수도 없고요.다빈치 코드를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미국 지폐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이해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시사저널=정윤경 기자·이강산 인턴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헌법재판소 파면 결정 후 일주일 만인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를 떠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나 윤석열 좋아했어. 임기도 다 못 채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까 짠하기도 해. 그런데 어떡하겠어. 헌법재판소가 파면했잖아. 그러면 좀 받아들이고 화합할 줄도 알아야지. 나라가 얼마나 어려운데. 국민들이 더는 분열하면 안 돼. 화합해서 나라 발전을 생각해야지"윤석열 전 대통령이 서울 한남동 관저를 떠나 서초동 사저로 옮긴 11일, 사저 앞에서 만난 김아무개씨(67)가 한 말이다. 사저 인근 주민인 김씨는 '연일 이어지는 시위 때문에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내가 시끄러운 건 괜찮다"면서 "같은 대한민국 사람끼리 갈라지는 게 문제"라고 했다.윤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5시9분 관저 정문을 통과해 21분 만인 오후 5시30분 서초동 사저에 도착했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후 일주일 만이다. 관저와 사저 앞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과 탄핵 찬성 세력의 집회가 각각 열렸지만 이를 바라보는 대다수 시민들은 "더 이상 분열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레 속내를 털어놨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헌재의 판결을 받아들이고 화합의 길로 나아가자는 뜻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4월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를 떠나기 앞서 정문 앞에서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지자라고 밝힌 정은혜씨(48)도 국민 통합에는 이견이 없었다. 정씨는 "솔직히 관저 앞에서 울고불고하는 게 이해는 잘 안된다"면서도 "오죽 좋아하면 그러나 싶다"며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를 이해한다고 했다. 그는 "분열이 좋은 사람이 대한민국에 어디 있겠느냐"며 "정치인들이 못나서 반으로 갈라진 것이지 진작 잘했으면 이렇게까지는 안 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2030 세대의 생각도 비슷했다. 대학생 김아무개씨(22)는 "솔직히 정치에 관심이 없다"면서도 "각자 시위는 할 수 있지만폭력적인 방향으로 흘러서 누군가가 다쳐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아무개씨(32)는 "이 정도로 서로를 향해 화를 내고 싸운 적이 있었나 싶다"면서 "정치에 관심을 갖는 건 좋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