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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의 예술과 정치









2024년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기념 공연에서 만난 조르자 멜로니 총리와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 [사진 이탈리아 정부 각료회의 의장단]







극우 정파 ‘이탈리아의 형제들’(Fratelli d’Italia) 당수로 2022년 총선에서 승리한 조르자 멜로니는 이탈리아 역사상 첫 개인회생제도가온법률사무소 여성 정부 수반이다. 일론 머스크와 염문설이 돌기도 했던 멜로니는 총리 취임 첫 문화 행사를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가졌다. 멜로니는 2022/23 라 스칼라 오페라 시즌 개막작 ‘보리스 고두노프’ 공연에 세르자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 등과 나타나 로열박스에서 카메라 세례를 함께 받았다.

중산층 가정에서 나고 창업자금지원 자란 멜로니는 정계 입문 후 오페라를 가까이할 기회가 적었다. 로마 의회, 하원, 청년부 장관으로 이어지는 정치 여정에서 대중 연설을 통해 가족, 종교를 우선하는 이탈리아적 가치를 설파하곤 했다. 그러나 권력 최정점에 오른 이후, 멜로니는 기존의 과격 이미지를 순화하는 수단으로 오페라의 아우라를 적극 활용한다.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즘 정권 이래 첫 극우 우리카드 현금서비스 정부 출현에 유럽 정치권은 긴장했지만, 멜로니는 사업가, 배우, 패션 디자이너, 건축가를 포함한 밀라노 상류 사회 명사들과 오페라를 즐기면서, 극단에서 벗어난 온건 이미지를 대내외에 어필했다. 지난해 말 두바이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바쁜 와중에 두바이 오페라로 건너가 스칼라 단원을 격려하며 예술을 챙기는 건실한 지도자상을 심기도 했다.
기준금리 인하 대출금리예술을 챙기는 건실한 지도자상 심어 멜로니가 음악 정치를 전개하면서 손을 내민 셀럽은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다. 1986~2005년 라 스칼라 오페라 음악감독을 지내며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와 막역했던 무티는 정치 다툼에 치여 한동안 권력층과 거리를 뒀다. 지난해 6월 베로나 원형극장에서 열린 이탈리아 오페라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 부동산 수수료 계산기 재 축하 공연에서 멜로니와 만난 무티는 공개적으로 정부 노력을 칭송했다. 이날 과감한 드레스를 소화한 멜로니는 “이탈리아 음악은 더 존경받을 가치가 있다”는 무티 주장에 공감을 표하며, 아버지와 딸처럼 정답게 포옹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정치 이단아 이미지를 털고 싶었던 멜로니가 중도우파 무티와 손잡으며 예술 엘리트로 변모한 순간이다.
하지만 무솔리니 복권 시도, 성소수자 정책 후퇴, 비판 언론 검열 강화 같은 세부 정책을 보면 여전히 극우 특유의 차별적 담론이 잠복해 있다. 이탈리아 예술기관 장악 역시 정권 입맛에 맞는 보은 인사로 이뤄졌다. 이탈리아 문화부는 박물관, 미술관 최고 책임자를 외국인에서 이탈리아인으로 물갈이하면서 멜로니의 오랜 후원자 피에트란젤로 부타푸오코를 베니스 비엔날레 위원장에 임명했다.
‘이탈리아 우선주의’를 내건 오페라 극장장 교체 논리는 가관이다. 프랑스 출신으로 세계 저명 극장에서 출중한 경영 능력을 입증한 스테판 리스너 나폴리 산 카를로 극장장, 도미니크 메이어 라 스칼라 오페라 극장장을 ‘70세 이상 재임 불가’ 조항을 신설하며 찍어내려 했다. 리스너는 법원 항소로 복귀했지만 메이어는 곧 자리에서 물러나 스위스 로잔 체임버 오케스트라로 옮긴다. 여성 지휘자 베아트리체 베네치는 멜로니와 절친 관계가 알려지고 외국인 혐오를 앞세운 포르자 누오바(Forza Nuova) 후원에 힘입어 예술계 거물이 됐다. 원님 덕에 나팔 분 격이다.
아이러니하게 이러한 멜로니의 이미지 맛사지를 오페라가 조롱하고 있다. 연출가 로버트 카슨은 지난해 모차르트 오페라 ‘티토왕의 자비’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제작하면서, 황제의 딸 ‘비텔리아’의 외양을 멜로니풍으로 정했다. 이탈리아 주요 언론은 비텔리아 캐릭터를 ‘교활한 여우’ ‘피와 권력에 목마른 포식자’로 풀이하며 실제 멜로니와 비교했다. 카슨은 극중 비텔리아가 기도한 쿠데타의 공간 배경을 2021년 1월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 의사당 공격 느낌으로 그렸다. 연출가가 트럼프-멜로니 연결 고리를 오페라로 예견한 것이다.
이탈리아 극우파가 정치권에 클래식을 끌어들인 역사는 오래됐다. 무솔리니와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의 관계도 흥미롭다. 무솔리니는 이탈리아 전투파쇼를 창당하고 1919년 총선에 토스카니니를 영입했지만 원내 진입에 실패했다. 토스카니니는 당시만 해도 무솔리니의 공화주의적 열정을 존중했다. 총선 참패후 무솔리니가 파시스트 행보를 본격화하면서 토스카니니는 그와 거리를 뒀고, 무솔리니가 1922년 로마진군으로 총리에 오르자 “살인이 가능하다면 무솔리니를 죽이겠다”고 극언했다.

밀라노 쏠림 심화, 청년 지휘자 씨가 말라









2024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티토왕의 자비’에서 멜로니 총리를 연상케하는 비텔리아역의 알렉산드라 마르셀리에(왼쪽)와 세스토역의 체칠리아 바르톨리. [사진 ⓒ Marco Borrelli]







양측 대립은 1931년 파국을 맞았다. 토스카니니는 그 해 5월 14일 볼로냐 테아트로 코뮤날레에서 작곡가 주세페 마르투치 기념 공연 지휘를 준비했다. 볼로냐시 관료는 집권 파시스트의 당가(黨歌) ‘조비네차’(Giovinezza, 청년) 연주를 요구했지만 토스카니니는 거절했다. 극장에 도착한 토스카니니에게 청년 무리가 재차 조비네차를 요청했고 지휘자가 이를 거절하자 청년들은 64세 노인의 얼굴을 폭행했다. 무솔리니 집권 하에서 정적 암살을 자행한 정치깡패 ‘검은 셔츠단’ 소행이다. 훗날 공개된 자료에서 무솔리니는 “무례한 음악가에게 좋은 교훈을 줬다. 정말 기쁘다”며 백색테러를 옹호했다.

무솔리니가 실권을 잡게 되자 이탈리아 각지 음악가들이 오페라 부흥을 명분으로 신흥 권력에 기생했다. 이탈리아 오페라 시장의 헤게모니는 18세기 나폴리 산 카를로(1737년 건립)에서 밀라노 라 스칼라(1778)로 옮겨갔다. 로마 기득권 음악가들은 로마 제국 재생에 꽂힌 무솔리니를 구슬려 1880년 건립한 로마 오페라극장을 넘어서는 새로운 국립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부추겼다. 무솔리니 역시 겉으론 민원을 받아주는 모양새를 취하며, 내심으론 이미 눈엣가시가 된 토스카니니가 자리 잡은 밀라노 라 스칼라의 오페라 패권에 도전하는 대항 기지로 로마 극장 신축을 고려했다. 무솔리니는 다방면에서 이탈리아를 ‘로마화’하려고 노력했지만, 극장 신축은 무산됐고 지금도 로마 국립오페라하우스는 라 스칼라를 능가하는 패권 극장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오페라 종주국 위상을 유지하려는 이탈리아 중앙정부 노력은 멜로니 정부 이전에도 존재했다. 1967년 오페라 자치법인 및 음악 활동 규정이 법제화됐고 1996년 오페라하우스 지방분권화 법안이 개정됐다. 1990년대 후반엔 잦은 총리 교체에도 불구하고 오페라하우스의 강도 높은 구조 조정과 민영화가 진행됐다. 지방자치단체 소유의 ‘전통 극장’, 대도시 자치법인 관할의 ‘오페라 교향악 재단’으로 분류하는 현행 체계가 이때 자리 잡혔다.
2025년 1월 기준, 이탈리아 오페라하우스는 약 60여개로 이 가운데 13개 극장과 1개 오케스트라(로마 산타체칠리아 음악원)가 오페라판 1부리그 ‘세리에 A’를 꾸린다. 대다수 1부 극장이 이익단체인 국립 오페라 교향악재단 연합회(ANFOLS) 회원에 가입했지만, 오직 라 스칼라 극장만 열외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유한 롬바르디아에 있어 어지간한 경제 위기에도 운영에 큰 문제가 없어서다. 1990년대 오페라하우스 재단화 국면에서도 라 스칼라는 1년 만에 민간 출자를 완료했다. 극장 민영화가 다른 곳에는 위기였지만 라 스칼라에는 기회였다.
21세기 들어 라 스칼라도 이탈리아 외교 노선과 상황 변화에 반응하느라 고전하고 있다. 2010년대 극장장을 역임한 알렉산더 페레이라는 사우디에서 5년간 매년 300만 유로(약 45억원)의 후원금을 유치했지만 이사회에서 파트너십 승인이 부결됐다. 2018년 이스탄불 사우디 영사관에서 벌어진 자말 카슈크지 암살 배후에 사우디 왕실이 있다는 여론의 반발 탓이다. 사우디 자본을 대신해 독일 지멘스, 중국 관광청 같은 국외 기업을 유치했지만 멜로니가 2023년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 탈퇴를 선언하면서 밀라노에서도 중국 자본이 빠르게 빠져나갔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예술적 유산을 놓고 벌이는 밀라노와 그 외 지역의 오랜 격차 탓에 핵심인 오페라의 비전 논의가 공전하는 사이, 이탈리아 오페라를 짊어질 자국의 청년 지휘자는 씨가 말랐다. 라 스칼라 오페라 음악감독을 밀라노 출신 리카르도 샤이에서 역시 밀라노 사람인 다니엘레 가티로 교체하는 정도로 이탈리아 오페라가 번성할 수 있을까? 오페라에 우주를 담고자 한 이탈리아 작곡가의 선의가 이탈리아 연주자의 일자리 보전을 부르짖는 정치권의 쇄국 목소리에 묻힐 위기다.














한정호 공연평론가·에투알클래식 대표. 런던 시티대 대학원 문화정책 매니지먼트 석사. 발레리나 박세은, 축구인 박지성 등 예술 체육계 명사의 에이전시와 문화정책 자문을 담당하는 에투알클래식 대표를 맡고 있다. 월간 객석, 일본 오케스트라연맹에서 일했고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문화다양성위원회 민간위원이다.